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일본원정 (문단 편집) == 번외: 원나라의 [[아이누]] 침공 == [[원나라]]는 [[아이누]] 족이 살던 [[사할린]] 섬을 [[타타르 해협]]을 건너 [[1264년]], [[1284년]], [[1285년]], [[1286년]]에 침공하기도 했다.[[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0|몽골이 사할린 섬을 공격한 사연은?]] [[원사(역사책)|원사]] 세조본기에 따르면 1만의 병력을 투입했다고 하는데 몽골인들은 겨우 2만 병력으로도 [[러시아]] 공국 연합군 8만을 탈탈 털어버릴 만큼 당대 기준으로 정예병이었기 때문에 아이누인들에게는 가히 [[외계인]]의 침공이나 마찬가지의 날벼락이었다. 만주 동부와 연해주에 거점을 마련하고 쳐들어온 원나라 동로군[* 지역 특성 상 만주에 잔존하던 [[여진족]]의 비율이 높았다.]은 사할린에 거점을 확보하고 둔전을 일궜지만 아이누들의 저항이 의외로 강력했고 하필 [[1287년]] 원나라 본토에서 카이두를 중심으로 [[동방 삼왕가|동몽골의 왕가들]]이 합세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사할린 지배가 그리 오래가진 못했고 조공 체제를 유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여몽연합군]]의 [[규슈]] 침공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하기 쉽지만, [[원나라]], [[명나라]] 시기의 [[지도]]를 보면 당대인들은, [[규슈]] , [[혼슈]] , [[홋카이도]], [[사할린]]이 쭉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원나라]] [[지도]]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만 봐도 [[연해주]]와 [[사할린]] 및 [[일본]] 열도는 실제로는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계속 이어져 있지만 [[지도]]에는 완전히 다른 위치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에서는 일본 열도가 대륙의 먼 남쪽에 위치해있고, [[연해주]]와 [[사할린]]이 대륙의 극동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만약 그걸 알았다면 여기서 [[도호쿠]] 방면으로 남진하면 [[태풍]]도 거의 없고 원나라 본토인 만주에서도 더 가까운 침공 루트인데다[* 연해주와는 아예 바다를 마주하며 붙어 있으며 동만주의 [[훈춘]], [[옌지]] 등과도 가깝다.] 겨울에는 [[타타르 해협]]이 얼어붙어서 걸어서 건널 수도 있기 때문에 이쪽 루트로 침공을 고려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리 지식의 부재로 그러지 않았다. 물론 이쪽 길은 상당히 험하기도 하고 여름에 출병한다 해도 원주민들의 저항이나 당시 숲과 산으로 울창하게 둘러싸인 [[홋카이도]]와 [[사할린 섬]]의 특성상 몽골 기병을 포함한 원나라 원정군들이 게릴라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는지라 태풍만 없다 치면 고려를 통해 공격해 들어가는 루트가 훨씬 안전하다 볼 수 있겠다. 더욱이 이 당시 일본의 중심지는 [[교토]]와 그 서부 지역이었고 현재의 [[도쿄]]를 포함한 관동 지방은 그냥 뻘밭이었으며[* [[도쿄]]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건 관동 지방을 영지로 삼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부터고 [[에도 막부]] 시기 쯤 되어야 현재 [[도쿄]]의 모습이 등장한다. 애초 에조라고 부르던 아이누 잔당들이 관동과 도호쿠 곳곳에 남아서 일본과 싸우고 있었다.] 일본 동북부는 미개척지였다. 따라서 [[만주]] 동부와 [[연해주]]에서 [[사할린]], [[홋카이도]], 일본 [[도호쿠]] 지방을 거쳐 [[규슈]]로 간다는 건 지리를 알아도 수만 명의 보급이 힘든 루트였다. 지역민들의 게릴라는 덤이다. 거기에 만주 자체가 지형이 험악해 대규모 군대의 기동이 여의치 않고 원에 복속하지 않은 야인여진[* 월타족, 오로치족, 나나이족, 에벤키족 등 만주 북부와 현재의 [[하바로프스크]]인 외만주 일대에 잔존한 [[퉁구스]]인들을 야인여진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원나라와 명나라에 복속되지 않고 순록을 유목하며 살다가 [[청나라]] 때 [[숭덕제]]에 의해 복속되었다. 조선은 이들을 올량합이라 불렀고 이게 오랑캐의 어원이다.] 부족들의 습격이라는 변수도 커서 중간에 전력 누수가 더 심했으면 심했지 득을 볼 순 없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